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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하는 중국토종메이커 체리차를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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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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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0 1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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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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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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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토종 자동차메이커인 체리자동차가 전 세계 자동차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GM대우 경차 마티즈(시보레 스파크)를 모방한 QQ를 출시, 법정싸움까지 가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던 체리자동차는 최근에는 공장을 풀 가동해야 할 만큼 판매호조를 보이고 있는데다 세계시장을 공략할 독자모델 4도어 해치백 미니카 개발도 진행중이어서 향후 자동차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를 전망이다. 체리자동차는 10년 전인 지난 1997년 양쯔강 유역의 작은 도시에서 출발했으나 현재는 중국 내에서 가장 큰 독립계 자동차업체로 성장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외국의 보도진들에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 체리자동차의 조립공장은 하루 16시간씩 가동중이며 특히, 모든 설비는 유럽에서 수입된 최신장비로 구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엔진공장은 일본제 정밀 공작기계와 이탈리아제 로봇으로 이뤄져 자동화율이 매우 높고 도장라인도 독일업체의 지원으로 최신시설을 자랑한다. 체리차 제 1.2공장에서는 QQ3, 중형차인 東方之子, V-5, SUV 차량인 팅고 등이 생산되고 있다.
현재 체리자동차 R&D센터에서는 무려 40-50종의 신차개발이 진행중이며 그 중 최소 10개 모델은 내년에 당장 양산될 수 있는 모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체리자동차의 올 판매량은 지난 2001년에 비해 무려 10배가 증가한 40만대 이상으로 전망되며 2008년 새 조립라인이 완성되면 연간 생산능력이 70만대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어 체리차는 공장 추가건설 등으로 오는 2010년에는 100만대 생산체제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자동차 수출도 지난 2006년 연간 5만대에서 올해는 11만대 이상으로 늘어날 예정이며 현재 중국 연안지역 운송 및 해외수출을 위해 양쯔강 유역에 자동차 전용부두를 건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체리차는 특히, 지난 7월 미국 크라이슬러와 소형차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크라이슬러는 체리차가 생산한 소형차를 2008년부터 남미와 기타 개발도상국시장에 판매할 예정이며 2009년부터는 미국과 서유럽지역에서도 판매를 개시할 계획이다. 이같은 계약은 미국 빅3 중 처음으로 중국업체가 생산한 완성차를 아웃소싱한 것으로 향후 물량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체리자동차는 크라이슬러와의 제휴를 통해 기술지원과 판매 및 AS망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체리차는 자신들이 만든 차량이 닷지브랜드로 판매되더라도 소비자들이 중국 체리차가 만든 차임을 알 것이라는 사실과 소비자들이 중국제품의 안전성과 품질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지만 이를 크라이슬러와 함께 정면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체리차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요인은 중국의 저임금과 대규모 자본투자, 그리고 중국정부의 지원이 어우러졌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체리차의 경력이 짧은 엔지니어의 연봉은 겨우 6천달러(850만원) 수준으로 그들은 대부분 기숙사에서 4명이 한개의 방을 사용하고 있다. 조립라인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은 중국 안휘성 기준으로는 높은 시간당 1달러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체리자동차를 이끌고 있는 Yin Yongyao(이엔 용 야오)사장은 안휘성지역 공산당 간부 출신으로 소위 팔부신(八部神) 중의 한명이다. 팔부신은 법을 수호하는 8명의 수호신을 의미하는 불교용어로 체리자동차의 설립단계에서부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그룹을 일컫는다. 체리차 관계자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체리차의 일정에 맞춰 부품업체들이 늦은 밤이나 주말에도 체리차 본사에 모여 회의를 하는 모습은 종종 있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체리차는 지난 1990년대 중반 안휘성의 일부 관료들이 자동차에 승부를 걸기로 결의하면서 태동했다. 자신들의 지역에 자동차업체를 육성함으로써 1인당 평균소득이 4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안휘성을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것이다. 당시, 안휘성 최고책임자의 비서였던 체리자동차의 초대사장 Zhan Xialai(잔 시알라이)씨는 국영 건설업체에 근무하던 Zhou Biren씨를 영입, 회사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이들 두 사람은 안휘성 내에 자동차를 구입할 여력이 있는 가구 수가 얼마나 될 것인지에 의문을 품은 다른 관료들로부터 심한 반대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Zhan과 Zhou는 당시 폭스바겐 합작사에 근무하던 Yin을 영입하는 등 안휘성 관련 인물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처음 두 해 동안 체리차는 팔부신들이 공터에 있는 다 쓰러져 가는 건물에서 자동차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냉 난방시설도 없는 곳이어서 컴퓨터가 작동을 멈추기도 했다고 체리차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초기에 체리차 설립자들은 해외 합작선을 물색키로 하고 여러 업체들과 접촉했으나 그들을 합작 상대로 생각해 주는 업체는 한 군데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독자노선을 걸었던 체리차는 1996년 영국에서 엔진 조립장비를 구입하려 했지만 포드사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1997년 체리차는 첫 번째 모델인 Fengyun(펑윤) 세단의 설계를 위해 대만업체에 용역을 의뢰했고 펑윤은 폭스바겐과 GM에 납품을 하는 부품업체들로부터 대부분의 부품을 조달받아 얼기설기 끼워맞춰 마침내 1999년 12월에 첫 차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체리자동차는 자동차사업에 대한 국가의 인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첫 제품의 판매를 하지 못했다. 이후 인가를 받아 판매를 시작한 펑윤은 2001년 2만8천대가 팔렸다. 그 후 등장한 모델이 2003년부터 시판된 QQ로 이 차는 시보레 스파크를 모방했다는 이유로 중국 법정에 제소를 당했다. 양측의 소송은 종결되지 않은 상태로 2005년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중국정부는 체리차가 낡은 기술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세계적인 자동차업체로 키우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외국인 기술자와 해외 자동차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던 중국인 기술자들을 대거 영입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미국 델파이사에서 내연기관 전문가로 근무중이던 Xu Min씨를 영입, 지난해 3개의 독자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이에따라 체리차는 세계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완전 독자모델 개발에 성공했으며 내년부터는 전 세계시장에 다양한 자사 모델을 쏟아내 놓을 예정이다. 체리차는 지난 3월에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총 4만4568대의 차를 팔아 상하이폴크스바겐, 제일자동차폴크스바겐, 상하이 GM 등 내로라하는 합작기업을 제치고 토종 자동차 업체로는 사상 처음으로 중국내 월간 판매실적 기준 1위를 차지했다. 체리는 현재 QQ가 서남아시아와 중동, 북아프리카, 러시아등 전세계 58개국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출처:자동차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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