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출시 이후 식을 줄 모르고 이어지는 '그랜저에이치(HG)' 자동차의 배기가스 실내 유입 논란은 '품질 경영'을 수년째 내세우고 있는 현대자동차에겐 뼈아픈 사건이다. 터져나오는 고객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내놓은 미흡한 대응도 논란거리이지만, 무엇보다 대표 모델에서 예상치 못한 결함이 발견된 원인을 찾는데만 수개월이 걸릴 정도로 현대차의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랜저 배기가스 실내 유입은 출시 직후부터 '보배드림' 등 자동차 동호회를 중심으로 집중 제기됐다. 장기간 운전시 "머리가 어지럽다"거나 "매쓰꺼움이 느껴진다"등의 고객들의 구체적인 증언도 현대차에 쇄도했다. 논란이 확대되면서 판매량도 뚝 떨어졌다. 지난해 2월부터 6월까지는 매달 1만대 이상 팔렸으나, 그 이후부터는 6000∼8000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대차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본격 대응에 나선 것은 지난해 11월부터다. 현대차는 트렁크 내부 밀폐 작업을 무상으로 해주는 캠페인을 벌였다. 앞서 지난해 6월에는 문제를 제기한 자동차 동호회 대표들을 불러모아 배기가스 유입 원인과 대응책을 설명하기도 했다.
류기욱 자동차성능연구소 팀장은 "당시 현대차가 정확한 배기가스 유입 원인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며 "가장 큰 원인은 급가속과 급정거 상황에서 커지는 내부와 외부의 기압차였다"고 말했다. 트렁크 밀폐 수리 작업이 배기가스 유입을 막는 근본적인 조처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연구소는 지난해 11월 트렁크 밀폐 작업을 한 차량에서도 배기가스가 유입되는 사실을 확인했다.
류 팀장은 "외부 공기 순환 상태에선 배기가스가 유입되지 않는데서 보듯이 그랜저의 문제는 과거 차량보다 밀폐가 더 잘됐던 게 문제"라며 "과거에 출시된 차량에는 이같은 문제가 없었고, 케이(K)5나 케이7 등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차량에서 배기가스 유입 문제가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뒤늦게 원인을 파악한 현대차는 지난해 12월에야 내부 공기 순환 모드로 운전자가 설정을 했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외부공기 순환모드로 전환되도록 '작동 프로그램'을 변경해주고 있다.
현대차가 배기가스 논란에 허둥댄 것은 그동안 실내 공기를 품질의 한 요소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류 팀장은 "사후적으로 파악한 사실이지만, 현대차와 달리 베엠베(BMW)나 벤츠 등은 실내 공기 오염도 평가를 품질 점검 항목으로 갖고 있었다"며 "이 때문에 내부공기 순환모드에서 자동적으로 외부공기 순환모드로 변경되도록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었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세계 판매량 5위권에 들 정도로 품질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내 공기의 청정도까지 꼼꼼하게 점검하는 세계 유명 제조업체와는 격차가 있는 셈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배기가스 유입 논란은 현대차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아픈 경험이자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통안전공단은 배기가스 유입이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는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교통안전공단이 그랜저의 배기가스 유입 사실을 확인했지만,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따질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리콜이 아닌 무상수리 권고 조처를 지난 1월에 내린 바 있다.
권해붕 자동차성능연구소 실장은 "배기가스 유입 안전 기준을 만들기 위한 연구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을 짤 때 4억원 정도를 신청할 예정"이라며 "올해에는 사전 연구를 위해 다른 예산에서 3000만원을 끌어와 기초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